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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i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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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i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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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o Exhibition

March 12⏤April 08, 2014

PYO GALLERY SOUTH

표갤러리 사우스에서는 3월 12일부터 4월 8일까지 운보 김기창 판화전을 선보인다. 운보 김기창(1914∼2001)은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이겨낸 한국미술의 거목으로 평가돼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자유롭고 필력이 느껴지는, 추상과 구상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 20여점이 전시됩니다.

 

 

 김기창은 1913년 서울 운니동에서 당시 총독부 토지관리국 직원이던 아버지 김승환과 어머니 한윤명 사이에서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여덟 살에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상실한 후 언어 장애의 증세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의 소개로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동양화를 배워 1931년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하여 1940년까지 6회 입선, 특선 3회를 기록했다.

24살 때인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운보는 연4회 특선 경력으로 27살에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는데, 이후로 광복 전까지 주로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을 정당화하는 친일 활동이 이어졌다. 1942년에서 1944년까지 일제 말 친일 미술전인 반도총후미술전에 후소회 동문인 장우성과 함께 일본화부 추천작가로 발탁되었다. 1943년 8월 6일자 매일신보에 게재된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조선식산은행의 사보 회심지에 실린 그림과 훈련병을 그린 〈총후병사〉, 조선총독부의 후원을 받아 경성일보사가 1944년 3월부터 7개월간 서울에서 연 ‘결전’ 미술전람회에 출품된 〈적진육박〉이 친일 작품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1940년 10월 조선남화연맹전, 1943년 1월 애국백인일수전람회를 통해 일제의 기금 모집에 협력하였다.

1943년에 아내 우향 박래현과 처음 만나서 3년간의 필담연애 끝에 1946년 결혼하였다.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 화랑 주최 교 한국 현대작가전에 초대 출품했다. 1960년 국전 초대작가가 되어 국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타이베이와 홍콩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 출품했고 이어 도쿄•마닐라에서 열린 한국미술전에도 출품했다. 1962년 수도여자사범대학 (훗날 세종대학교)으로 교직을 옮겼고 문화 자유전에 출품했다.

 

1963년에 5월문예상 미술본상을 수상했고,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에도 한국 대표로 출품했다. 1964년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도미, 1969년에 재차 도미하여 뉴욕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홍익대학교와 세종대학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1979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하여 초대회장에 취임하였고, 1984년에는 서울 역삼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인 청음회관을 설립하였다.

Selected Works

Installation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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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Kichang  김기창

김기창(1913-2001) 작가는 1947년 자유신문 미술기자, 국립민속박물관 미술부장 등을 지냈다. 196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62년부터 1974년까지 수도여자사범대학 현 세종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백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1969년부터 1975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 1970년 미술협회 부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화단과 교육계에서 활동을 했다. 1989년 예술원 정회원이 되었다. 그 외에도 1950-60년대 초반까지 만화가로 활동하여 어린이 잡지에 이야기 그림 형식의 만화작품을 비롯해 어린이 만화책 <허생전>을 낸 바 있었다. 1988년작 한국화 <까치 호랑이>는 만화가 시절에 다진 만화적 예술성을 정통 미술 기법에 대입한 것이다.
수상경력으로는 1971년 제12회 3.1 문화상이 있으며, 1972년과 1977년 3.1문화상 심사위원에 위촉되었다. 또한 1977년 은관문화훈장, 1981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2년 중앙일보 중앙문화예술상 본상, 1983년 예술원상, 1986년 '5.16민족상과 서울시 문화상', '1987년 '색동회상'등을 두루 수상했다. 이외에도 1981년 한독미술가협회 회장, 1985년 후소회 회장,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동남아채묵전 추진위원장, 1988년 서울 올림픽 아트포스터 제작 작가로 선정되는 등 각종 여러 다채로운 경력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