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n Hyun-jin Solo Exhibition

"불가시의 가시화

Visualization of the Invisible"

2017. 5. 13 - 2017. 6. 10

21세기 추상회화의 ‘글로벌 로드맵’ 구상

: 권현진의 근작 <Visual Poetry Sculpture>에 시사된 “불가시의 가시화”의 경우

김복영(미술평론가⋅철학박사⋅전 홍익대 교수)

권현진이 국내외전을 통해 2천 년대에 줄곧 탐색해온 <Visual Poetry Sculpture>는 그 연륜 만으로도 어언 십여 년을 헤아린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이렇게 ‘눈으로 읽는 시요 조각’visual poetry sculpture에 집념을 경주케 했고 또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작가가 지난 해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하이크로마와 스푸마 효과를 이용한 추상표현의 실험과 미디어 활용 연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의하면 ‘색채는 곧 작가의 내적⋅감각적 이상 세계를 표현하는 언어’요 ‘오늘의 추상회화는 이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그 진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평범한 이 구상은 작가가 제12회전을 맞는 근작전은 물론 이후에 도래할 미래의 변곡점變曲點이자 ‘21세기 글로벌시대의 추상회화의 복원’이라는 보다 진지한 거대담론을 담고 있어 그 의의가 크다. 작가가 모색하고 있는 미래지향적 거대담론이란 한 마디로 ‘불가시의 가시화 ’visualization of the invisible로 요약된다. 이 말은 회화에서 색채란 색채 그 이상의 것이며 이 의미에서 색채는 하나의 ‘언어’parole라는 걸 함의하지만, 탈근대기 이후 글로벌기global era의 추상회화의 복원이라는 보다 심대한 키워드를 담보한다는 데 또한 뜻이 있다.

작가가 근작전을 빌려 시도하는 추상회화의 글로벌 복원recovery에 대한 의지와 아이디어는 작가 자신만으로 볼 때는 파괴력이 크지 않을지 모르나 ‘글로벌기’라는 시대의 지평에서 볼 땐 전[全]지구적 의의를 시사하는 임팩을 갖는다. 권현진은 먼저 이를 자신의 입장으로 좁혀 말한 다음 글로벌 회화의 근본 문제로 확장시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화의 영토에서 ‘본다’는 건 이전에 보았던 회화의 방법적 원리를 해체한다는 걸 뜻한다. 20세기 초 칸딘스키가 처음 추상화를 구상했던 건 이전 사람들이 보지 못한, 그래서 기존의 관점을 해체함으로써 가능했다. 그는 이 가능성을 위해 기존의 것을 새로운 형식으로 변형하고 재배치함으로써 새것을 성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본다는 건 이전의 것을 해체하고 새로운 세계를 재구축하는 데 있다. 추상적 시각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의 추상회화란 그러나 애초 칸딘스키가 순수추상을 구상했던 것과는 달리 잡다한 세계를 아우르는, 요컨대 개념⋅감각의 혼합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이는 칸딘스키의 시대와는 아주 다른 잠재력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작업노트, 2017>에서 번안).

이 언급은 작가가 근작전에 즈음해 과거 유럽 추상회화의 원조인 칸딘스키와 몽드리앙은 물론 후기 근대기의 뉴욕 추상표현주의가 지향했던 이른 바 ‘가시적인 것의 불가시적인 것으로의 환원’reduction of the visible toward the invisible의 방법과 정면 대결하려는 의지를 표명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이란 모두冒頭에 말한 ‘불가시의 가시화’로 요약된다. 이는 이를테면 근대기의 추상화로부터의 코페니쿠스적 전회를 뜻하는 것이라 잘라 말할 수 있다. 더 자세히 말해 작가가 지난 세기의 ‘추상’抽象 abstraction이 근거했던 환원주의還元主義 reductionism가 기반했던 토대주의土臺主義 foundationism를 거부하고 글로벌시대의 주류사상인 반[反]토대주의anti-foundationism를 지향함은 물론,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근대기의 일원주의unarism를 버리는 대신 다원주의의pluaralism의 입지를 지향코자 한다는 걸 강조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오랜 시간 회자되었던 전통적인 추상화는 재사유를 필요로 한다. 20세기 미술에서 추상화란 형상을 제거하고 재현과 서술 그리고 환영illusion의 제거를 뜻했다. 이는 전근대 회화에 대한 부정을 선언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 그 결과 삭제와 제거를 시도하고 궁극적으로는 평면 조건인 흰 사각 캔버스라는 지지체를 강조했다’(같은 글에서 번안).

작가에 의하면, 이젠 이러한 의미의 추상화란 버려야 할 때다. 아니 본질이나 형식 같은 억압적 요소로부터의 해방을 통한 요소들의 융합을 시도할 때다. 그럼으로써 일체를 비워나가는 추상화가 아니라, 그 역으로 채움은 물론 확장을 시도하며 이를 위해 해체와 재구축을 꿈꾸는 추상화를 창출할 때다. 이 일환으로 빛⋅색⋅물감의 흐름을 재배치하고 이 과정에서 불가시적인 것들을 가시화하며 무엇보다 실재를 넘어 가상성virtuality을 불러들일 때다. 이는 다원적인 것들을 용인하고 이것들의 변형과 재배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의 <Visual Poetry Sculpture>는 살아 숨 쉬는 우리의 희망⋅꿈⋅비밀⋅감정을 투영하는 거울이다. 나의 작품은 보고자 하는 것만을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환상과 캔버스 바깥의 세계는 물론 가상까지 보고 또 담고자 한다. 시지각은 물론 촉지각으로 이해되는 가변적인 추상형태를 수용하고 단일 시점으로 파악될 수 없는, 보다 더는 시점을 떠난 영상이라는 매체적 특성을 이용함으로써 끊임없이 움직이는 환영을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미디어아트를 전통 추상회화와 연관시키고 디지털 환경 안에다 아날로그를 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단순히 예술과 기술의 결합이 아닌 일체의 것들을 융합하고 확장하는 추상회화를 창출하고자 한다’(같은 글).

작가의 이 언급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방출한다. 색채는 가장 단순한 작품에서 조차 최고 순도의 스푸마spuma를 빌림으로써 강열하다. 이 시도는 종래의 근대주의가 내걸었던 흰 사각 캔버스에로의 환원과 같은 최대의 단순성이라는 명제에 대한 반란이다. 근대 회화가 숭상했던 토대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를 위해, 근작전에서 권현진이 시도하는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보다 평면의 2차원을 3차원의 복잡성으로 확장하는 데 있다. 이는 근대주의가 일구었던 추상회화를 방법적으로 해체하는 최대의 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회화의 바탕재를 2차원 캔버스 대신 굴곡이 가해진 스테인리스를 사용해 요철의 웨이브가 갖는 삼차원의 유사입체로 대치함으로써, 회화란 항상 평면위에서만 운위되어야 한다는 통념을 배제하는 데 있다. 그럼으로써 작가가 작품의 명제로 부여한 ‘비주얼 포에츄리 스칼프쳐’가 시사하는 것처럼, 보는 것과 읽는 것을 융합하고 여기에 조각적 입체 공간을 추가하고 융합을 시도한다.

다른 하나는 ‘비주얼 포에츄리’visual poetry라는 명명命名처럼 회화와 시적 언어parole poétique를 융합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추상회화를 시적 유비類比 analogie poétique로 확장하는 상[相]전이phase-transition를 뜻한다. 이는 회화와 시詩라는 두 개의 장르를 아우르는 방법이어서 글로벌 트렌드의 융합적 경향을 극화하는 것으로 그 의의가 적지 않다. 그 방법은 색채의 3속성을 어휘목록으로 간주해서 다차원화하고 이를 빌려 시적 메아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색상Hue은 최소 세 개에서 다섯 개에 이르고 명도value와 채도chroma는 최고에서 중간을 거쳐 최저에 이르는 다단계화를 의식적으로 시도한다. 이것들 하나하나를 언어의 자질을 구비한 어휘목록으로 활용함으로써 상호간 메아리가 동반되도록 유도한다. 작가는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자동차용 광택제의 눈부신 원색을 의도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도입하고 있는 글로벌화를 위한 추상회화의 주요소는 무엇보다 현대양자물리학의 끈이론 내지는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 주장하는 여분차원extra dimension의 제 형태요소들이다. 이것들은 거품효과나 끈들의 네트워크, 나아가서는 물방울의 것들로 렌티큘러 효과renticular effects를 극대화하는 데 활용된다. 이렇게 해서 근작들의 화면은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의 조합이 가변성을 띠고 보는 사람에 따라 극단적인 착시錯視 illusion와 환영幻影 hallucination을 즐길 수 있도록 자극한다.

이러한 제 방법과 절차를 빌려 권현진은 그간 십여 년간 시도해온 불가시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의지를 보다 더 확장하고 있다. 이 시도는 다시 말하건대, 근대주의가 추구했던 가시적인 것들의 은폐와 평면으로의 환원이라는 축소지향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이는 전 세계가 그토록 선호한 확실성의 토대를 허물고 불확실성과 불확정성을 전면에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이야 말로 작가가 우리에게 색채의 언어를 빌려 유동하는 시적 가상the poetic virtual을 선사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과 수단이다. 그가 창출하는 가상은 최근 가상실재the virtual real라는 말로 회자되고 있는 미증유의 실재개념을 추상회화를 빌려 재부각시키고 있어 그 의의 또한 적지 않다.

그것은 색채로 이루어지는 가상시virtual poetry라는 그 자신의 독창적인 방법을 빌림으로써 보는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고 읽는 근사 삼차원의 영상을 선사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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