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Tae-sue Solo Exhibition

"Eco Flow"

2016. 2. 16 - 2016. 3. 4

생명의 파동

김 복 기 │ 아트인컬처 대표. 경기대 교수

1.

조각의 역사는 한마디로 ‘재료와의 격투’라 해도 좋다. 조각은 재료의 예술이다. 소재에 의해 작품의 조형이 규정되는 부분이 압도적으로 크다. 그래서 조각은 언제나 재료와 기술의 진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며 발전해 왔던 게 아닌가. 20세기에 등장했던 새로운 소재야말로 조각의 표현 방식을 일거에 바꿔 놓았다. 

 

오늘의 조각은 돌, 나무, 점토 같은 전통 재료에 더하여 플라스틱이나 시멘트, 철재 등에서부터 가벼운 것, 투명한 것, 부드러운 것에 이르기까지 가히 ‘재료 백태(百態)’의 시대를 맞고 있다. 현대조각은 제작 기법에서도 ‘깎는’ 조각(彫刻)과 ‘붙이는’ 소조(塑造)에 더하여 구성 혹은 집적 같은 전방위의 방법을 수용하고 있다. 중견 여성조각가 김태수의 작품 양식 역시 그 전제는 재료와 기법의 문제다. 재료와 기법의 연금술을 빼놓고 그 작품의 진가를 올바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김태수의 <Eco Flow> 시리즈는 용접조각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재료로 삼은 그 제작 과정은 이렇다. 조각의 기본적인 외형(이를테면 새싹이나 물방울 모양)을 넓은 철판으로 잘라, 그것을 지지체로 삼아 얇은 철판을 종이처럼 구부려 용접한다. 지지체와 철판의 용접 면은 90도 직각을 이루는데, 철판의 높낮이를 달리해 볼륨을 쌓아 간다. 바로 이 90도 직각의 용접 면을 지탱하는 지지체 두 개를 수직으로 세워 좌우동형으로 서로 결합하면 환조의 전체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조각은 형태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정중앙 지지체를 중심으로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룬다. 김태수의 조각은 결과적으로 환조의 형상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그 출발과 과정에는 평면의 감각이 깔려 있다.

 

김태수의 작품은 판재조각이다. 얇은 판재를 조형의 기본 단위로 삼아 환조를 만들어낸다. 평면의 입체화! 판재의 반복적인 구성, 유연한 곡선, 리드미컬한 율동. 그의 조각은 하나의 물리적 실체일지언정, 표면의 선적(linear)인 구성, 옵티컬한 색면은 우리에게 회화적인 경험을 강력하게 던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김태수의 조각을 감상할 때면, 3차원의 물질적 덩어리에 대한 경험보다 2차원 회화적 경험이 훨씬 앞선다는 얘기다. 평면의 입체화은 커팅, 성형, 용접 등 제작 기법의 괄목할 기술적 성장과 맞물려 있다. 또한 작가의 평면 드로잉과 종이 입체 구성을 정교하게 집약하는 3D 그래픽, 그 3D 그래픽을 평면으로 환원해서 공정 과정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은 컴퓨터의 힘이 크다. 평면을 입체화하고, 입체를 평면화하는 치밀한 조형!

 

2.

김태수의 <Eco Flow> 시리즈는 다색조각(polychrome)이다. 전통 조각에서 중시했던 볼륨이나 매스 못지않게 빨강, 파랑, 노랑, 연두 등 순도 높은 강렬한 색채가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다. 현대조각사에서 채색이 하나의 흐름으로 등장한 것은 1950년대 이후다. 채색조각은 르네상스 이래 재질의 자연색을 ‘날 것’ 그대로 드러냈던 조각의 전통을 일거에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채색이 등장했던 배경 역시 조각 재료와 기법의 확산이라는 큰 변화와 맞물려 있다. 이 시기부터 플라스틱 같은 색채 소재는 물론이고 페인트나 아크릴, 합성수지로 도장(塗裝)된 산업 완제품을 재료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크게 늘어났다. 결국 채색조각은 산업 기술사회의 부산물이라고 해도 좋다.

 

현대조각이 색채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옵아트, 미니멀아트 등 모더니즘 회화가 치달았던 환원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각이 회화의 진보에 눈을 돌렸다고 해도 좋다. 예를 들어 안서니 카로의 작품은 조각적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회화의 경험을 동시에 유도한다. 정면에서 본 그의 조각은 실제 공간 속의 모든 요소를 수직 면 회화의 직립성 속으로 압축한다. 그의 조각은 회화의 평면성을 노리는 ‘공간 드로잉’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조각예술에서 보이는 회화 조형의 수용을 ‘회화주의(pictorialism)’라 설파한 적이 있다.

 

김태수의 작품이 환조뿐만 아니라 부조로 형식적 폭을 넓혀 간 것은 필연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조각에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고정될 수 있는 2차원 평면으로의 동경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회화라는 2차원의 본성은 3차원의 예술과는 달리,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 어떤 한 순간에 즉각적 통합적으로 내용을 전달한다. 확실히 그의 부조는 환조에 비해 확고한 ‘정면의 구성’이 돋보인다. ‘조각’이라기보다는 ‘회화’에 더 가깝다. ‘입체’가 아니라 사각의 ‘평면’ 지지체 위에 펼치는 ‘판재 회화’인 것이다.

 

김태수의 작품은 환조이건 부조이건 색채와 구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작품의 표피는 전통 회화와는 또 다른 전망(perspective)을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 표피는 그저 부동의 일루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굴곡, 그림자와 같은 엄연한 물질적 실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김태수의 작품은 관람자의 동선과 시선의 변화에 따라 색채와 구성의 흐름, 그 조형이 시시각각 변하는 현상학적 전망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이 회화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회화와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Eco Flow>은 글자 그대로 ‘생태 흐름’이다. ‘Eco'는 ’Ecology'를 말하고 있다. 김태수는 일찍부터 ‘생명’이라는 주제를 작품에 담아 왔다. 생명의 기본 단위인 ‘씨앗’이나 이제 막 발아하는 ‘싹’을 떠올리는 형상을 작품에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 작품의 외형은 아직 형태가 완성되지 않은, 여전히 형태의 성장이 진행 중인 가변의 형태다. 형태라고 말하기 이전의 형태다. 그러나 결코 멈추지 않고 새로운 형태를 쫒아 흘러가는 순간의 형태다. 그저 씨앗이라고 해도 좋고, 과일이나 잎이라고 해도 좋은 덤덤한 원초의 형상이다. 때로는 대지를 박차고 쏟아 오른 이름 모를 생명체와도 같은 형상이다.

 

 김태수의 조형적 관심은 이 외형의 형태에 그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던 2차원 회화적 표현, 요컨대 판재의 리드미컬한 구성과 채색 효과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가미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Eco’에 더하여 ‘Flow’의 조형미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 ‘Flow’가 ‘Eco’를 더 극적인 상황으로 유도한다. 그 표면은 잔잔한 물결의 파장이나 부드러운 바람 결 같은 선의 흐름으로 점철된다. 마치 생명의 첫 순이 움을 터서 성장해 가는 장면처럼 작은 형태가 부챗살 모양으로 부드러운 파장을 일으킨다. 그 표정은 가시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그저 ‘기(氣)’라고 부를 수 있는 생명의 에너지를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의 작품 중에는 원(곡선)과 삼각형(직선)의 혼융을 통해 자연 형상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사이버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태수의 <Eco Flow>는 단순히 생태, 환경 문제와 같은 좁은 차원의 Eco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Eco Flow>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미시세계에서 출발해서 그 파장이 우주의 거시세계로까지 이어지는 열린 개념이다. 가시적인 생명 현상을 넘어 비가시적인 생명의 암시까지를 저 꿈틀거리는 유기적인 조형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Eco Flow>는 살아 있는 생명의 파동이다. 

 

© 1981-2019 PYO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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