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여파는 우리의 일상의 모습도 크게 변화시켜, 집에서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생필품 구매를 해결하고 경제·사회활동을 영위하는 시대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신체적인 감각과 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친밀한 관계는 피상적이 되었고, 어쩌면 사람들 간의 직접적 교류 없이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최소한의 관계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여겨질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작가 하정우에게 있어서 집은 현실로부터의 고립을 의미할까.

우리에게 영화배우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는 평소 그림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다채로운 배역을 맡아 연기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집은 작업실이자, 현실 세계와 분리된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를 보다 현실과 긴밀히 소통하도록 돕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일상 속에서 즐겨보고 경험하였던 대중 문화에서 소재를 찾는다. 가령, 해외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Balenciaga)'의 옷을 입은 강도들이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1963-) 감독의 데뷔작이자 B급 감성의 거침없는 액션 누아르 영화 제목인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 1992)》을 구호로 내걸고 화폭 위를 배회하거나, 날카롭고 예민한 얼굴을 한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가 근육질의 몸에 망토를 두른 영웅 슈퍼맨의 모습으로 새롭게 탄생하기도 한다.

곳곳에 힙합 문화에서 볼 수 있는 그래피티(graffiti) 요소와 십자가, 화살표, 꺾쇠 기호들을 접목하여 자유로운 느낌을 강조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가상과 현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차용한 여러 대중 문화의 소재들은 그의 작품에서 유연하게 결합하여 거침없고 단순한 윤곽선과 선명한 색채의 이미지들로 표현되었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어울려 하나된 모습이 흥미롭다.

이처럼 일상 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을 직설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하정우의 회화 작업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뿐 아니라 ‘집콕’ 생활이 장기화되며 퇴화하였던 신체 감각이 증폭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의 작품이 발하는 생생한 시각적인 자극은 오랜 친구들이나 가족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여 함께 술 한 잔 하며 거침없이 속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을 소환하는 것이다. 하정우의 작업은 변화한 일상 속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사회는 구성원들 간 유기적인 관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의 신작들을 통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심신을 치유함은 물론, 생의 감각을 일깨우고 개개인이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