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_ANNA_main.jpg

일상을 근거로 한 안나의 심상풍경

ANNA 

2012.03.20 - 04.03

Exhibition View

‘꽃-여성-세상’ 이야기

화가 안나는 꽃그림을 즐겨 그린다. 화병에 꽂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을 그리는가 하면, 꽃밭이나 숲속 같은 곳에 빼곡하게 자리를 틀고 있는 꽃무리를 그린다. 그러나 안나의 그림은 범속한 정물화나 풍경화와는 거리가 멀다. 만약 그의 그림을 상투적인 꽃그림으로 규정한다면, 비평과 감상 모두의 핀트가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다. 안나의 그림 앞에서 잠시라도 발길을 멈춰본 사람이라면, 그가 그려낸 풍요한 ‘꽃 안’의 세계, 깊은 ‘꽃 너머’의 세계에 흠뻑 빠져 들게 될 것이다.

안나의 꽃그림에는 참으로 많은 이미지(도상 혹은 소재)가 처녀림 속의 약동하는 생명체처럼 퍼덕이고 있다. 이미지들은 상식적인 원근의 구분이 없을 뿐더러 크기나 우선순위도 없이 카오스처럼 뒤섞여 우글거리고 있다. 그 앞에서,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이 화면을 뒤적이며 새로운 이미지를 하나하나 발견하고 확인하는 즐거움. 이게 안나 작품의 일차적인 매력이다. 가느라한 꽃술인가 싶다가도 애틋한 사랑을 염원하는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큰 꽃잎인가 싶다가도 매혹적인 여인의 미끈한 다리가 오롯이 떠오르고, 자연스레 뻗어나는 줄기인가 싶다가도 써늘한 뱀의 꼬리가 슬금슬금 기어간다. 그렇다고 한눈에 쉽게 잡히는 정직한 이미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화면 저 구석구석의 작은 부분에까지 섬세하고 은밀한 이미지의 씨앗을 잔뜩 뿌려 놓고 있다. 하나의 선, 하나의 점, 하나의 색채가 모두 미지의 이미지를 잉태하고 있어, 감상자들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새로운 이미지의 개화를 상상해 보는 일도 흥미롭다.

이렇듯 화가 안나는 꽃으로 연상할 수 있는 이 세상 모든 사상(事象)의 기표들을 화면 가득히 토해내고 있다. 마치 세포가 분열을 일으키듯-일종의 자동기술법(automatism) 같은 수법으로-무한 증식해 가는 화면은 가히 ‘이미지의 바다’라 해도 좋다. 그 이미지의 바다로 한없이 미끄러져 들어가다 보면, 우리는 인체의 가느린 신경줄 한 가닥 속의 미시세계와 만나거나 저 왕양(汪洋)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저편으로의 거시세계와 만나게 된다. 그렇다. 안나의 꽃그림은 삼라만상을 그렸다!

 

화가 안나가 저 삼라만상의 이미지들로 엮어내는 작품의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요컨대 작품의 기표에 대응하는 기의는 무엇일까. 먼저 안나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불러내 보자. 그 이미지들은 몇 가지 성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우리 삶 주변에서 쉽게 대할 수 있는 일상품이 등장한다. 대체로 현대 도시 여성들에게 걸맞은 생활용품이거나 패션 소품이다. 뾰족구두 하이힐 모자 전화기 가방 술병 시계 인형 풍선 가면 왕관 기타 촛불 장난감 컵 부채 리본 꽃병 등이 등장한다. 화가는 이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해 꽃과 함께 숨 쉬게 한다.

둘째, 사람이다. 주로 여성의 일상사가 중점적으로 등장한다. 목욕 화장 빨래 요리 운동 춤 골프 하이킹 등 가사와 여가 속의 여성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포착한다. 하트 무늬와 함께 남녀가 데이터를 즐기는 장면도 보인다. 직접화법으로 노골적으로 그린 이미지뿐만 아니라 입술 눈 눈썹 등을 대강의 모양만 암시해 두기도 한다. 때로는 천사나 부처 같은 종교적 도상이 복(福), 희(喜), 쾌(快) 같은 한자와 함께 등장한다.

셋째, 동물이다. 벌꿀 강아지 새 나비 거북 뱀 벌레 등이 등장한다. 이 이미지들은 대체로 인물들과 함께 어울려 모종의 상황을 암시, 은유하는 역할을 맡는다. 일종의 알레고리 같은 은유적 서술 방식에 동원되어 기의를 증폭시키는 소재들이다.

안나는 꽃 속에 여성의 세상살이를 수다 풀듯 늘어놓는다. 그는 양란(洋蘭)을 작품의 1차 모티프로 삼고 있지만, 실상은 그 꽃 속에 여성들의 소소한 삶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 풍경은 소박하고 진솔하게 써내려 가는 일종의 ‘생활 일기’라 해도 좋다. 안나의 생활 일기는 기본적으로 화가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삶에 기초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그 내용은 여성들의 범속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요컨대 안나는 진선미에 대한 여성의 욕망, 그 양지와 음지에 각별히 주목하고 있다. 마냥 여성이고 싶어 하는 여성 화가의 건강한 여성 이야기다. 화장으로 얼굴을 가꾸거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에 매진하는 등 아름다운 외모에의 집착, 고혹적인 몸매나 신체 부위 혹은 패션 소품의 치장에서 드러나는 관능미의 찬미, 세상살이의 대인관계 속에 난마처럼 얽히는 미묘한 감정의 흐름들, 가정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주부와 아내로서의 여성사…. 안나는 여성들의 희로애락을 때로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수줍은 자태로, 때로는 가슴을 내밀고 고개를 지켜든 당당한 자태로 풀어내고 있다. 안나의 그림은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 풍속도’라 부를 수 있다. (어느 철학자는 “여성의 본질은 화장에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보면, 안나의 화면 색깔은 마치 립스틱, 아이세도우, 볼터치 같은 화장품의 색소를 떠올린다.)

 

어느 한 지성인은 어머니의 몸 안을 ‘바다’라 불렀다. 여성의 자궁을 생명의 시원인 태초의 바다로 파악한 것이다. 그러니까 자궁은 생명 탄생의 집, 요컨대 ‘인간 원초의 집’이 아니겠는가. 안나의 꽃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꽃잎 하나하나가 생명의 단자(monad) 같은, 일종의 생명의 집(자궁) 같은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꽃은 형태학적으로도 여성의 생식기를 닮았다.) 화가 안나는 그 많은 집들마다 서로 다른 저마다의 ‘작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집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마치 영화 스틸 컷 혹은 카툰(cartoon) 만화의 한 장면처럼 따로따로 분절되어 있지만, 이 ‘작은 이야기’들이 모이고 보니, 그 울림은 바야흐로 만화경 같이 넓디넓은 세상 이야기로까지 뻗어가고 있다. 안나의 작품은 비근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종당에는 여성의 섬세한 감성으로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의 주름을 터치하는 의미 깊은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안나의 작품에서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이 세상살이의 교훈이라든가 지복(至福)을 추구하는 종교적 구도의 세계까지를 넌지시 감지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나 작품은 가벼운 낙관주의까지를 훌쩍 뛰어넘어서는 성숙한 길을 열어 가는 것이다. 꽃의 화려한 자태와 향기, 그러나 모든 꽃은 시들고. 기쁨과 슬픔, 성속(聖俗)이 교차하는 꽃그림. 화가 안나는 디스토피아 너머 유토피아를 꿈꾸며….

김복기 ㅣ art in culture 발행인 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