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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세뇌

LEE, SEUNG KOO 

2012.05.10 - 06.02

은유로 재구성된 제국의 신화

 

이승구는 개,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든 캐릭터로 그 만의 제국을 보여주는 시리즈 작업을 한다. 그들은 만화 속 이미지같이 단순하고 과장된 형태로 가벼우나 비판적인 의미를 함축하며 이 시대의 세태를 패러디 하고 있다.

 

이승구의 캐럭터 작업은 작가의 살아온 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승구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중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다. 작가와 가족은 국제적 유목민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를 동시에 살아가며 제도와 관습부분에서 극심한 편견과 차이를 경험 하였을 것이다. 그 안에서의 개인일상 역시 주변을 의식하는 보편적 사고와 예술가의 주관이라는 이중의 위치 속에서 조심스럽게 지내왔으리라 짐작된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어느 곳에서도 속하지 않은 어정쩡한 그의 정체성과는 달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고정된 위치에 속하고 자신 앞에 펼쳐진 세계를 향해 당당히 도전해 나갈 수 있는 희망적 존재로 그를 대신한 새로운 이상향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승구는 환경과 관습 안에서의 사회적 제도에 관한 거대담론을 개인의 가장 가벼운 일상적 소재에 대입하며 거리를 두기가 아닌 삶에 밀착한 예술작품을 하고 있다. 작가는 개와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역사 속의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적인 성별로부터, 인종, 민족, 계급, 국적, 장애의 범주 등의 사회적 관념에서 벗어나게 하고 만화적 캐릭터를 만들어 이 시대의 예술의 위치까지도 실험한다.  이 주인공들은 가장 가까운 주변에 속하며 보호받아야 할 순진한 대상으로 현실의 인물보다는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한계를 극복하며 상상과 초월적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승구의 개는 큰 얼굴에 얇은 눈과 큰 입을 갖고 귀를 뾰쪽하게 세워 비굴하면서도 귀엽고 공격적인 다양한 정체성을 담는 과장된 형태를 보인다. 그것은 흰색으로 된 몸에 감정과 심리적 발산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입과 혀를 갖고 있고 검은 원 무늬로 둘러싸인 한쪽 눈으로 순종이기보다는 혼성종임을 알 수 있다.

 

그의 개는 하나의 개체일 때에는 어른의 정체성을 갖는다. 같은 모양으로 복제한 개들이 줄을 지어 설치된 작품은 대량생산과 대중문화라는 자본주의의 체제나 관습의 획일성을 보게 한다. 붉은 입을 벌리고 이빨을 드러내며 혀를 내밀고 있는 그들은 단지 욕망의 대상으로 기존의 체제를 만들어가는 파편이며 원자의 기표다. 그것은 한 존재로서의 유머러스하고 개성이 넘치는 정체성은 사라지고 타협과 상호관계의 집단으로서 존재할 뿐이다.  개와 아이가 함께 설치되는 작업에서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들의 관계는 매우 친밀하며 서로 보호하고 보호받는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승구는 개의 표현과는 달리 자신의 아들을 모델로 삼은 아이는 일상에서 늘 관찰해왔던 부분을 포착하여 단순한 형태 안에서도 행동의 특징이 잘 드러나 보인다.

 

논리와 비논리를 떠나서 아이는 자신의 제국에서 영웅이 되고, 왕이 되며 다양한 신화를 써내려가는 순수한 가능성을 가진 자로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이 시대적 유아독존의 성향과 함께 가족의 희망과 기대를 갖고 있는 희망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곁에서 사랑을 받아야 되는 개와 아이는 현실과 가상의 공간으로 종횡무진 왕래한다. 그것은 같은 무리 속에 속해 있거나, 때로는 동반자가 되고, 이상형이 되면서 서로의 정체성은 달라진다. 아이와 개와 아버지(작가)는 동일인이다. 그들은 슈퍼맨이 되어 제도와 물질에 찌들어 있는 지구를 구하는 주인공이 되며 상상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등장하는 풍선은 평면 만화 속 말 풍선을 연상시키며 꿈과 이상을 대변한다. 그의 개는 풍선의 구멍을 통과하면서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넘나들며 영웅과 보편이라는 두 세계를 접속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는 존재 그 자체로 이미 이 두 세계를 갖고 있다. 개들을 보좌관으로 두고 있는 아이의 왕좌는 점점 높아지고 절망되는 이 세계를 구하는 수호신의 표상으로 더욱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이승구는 자신이 살고 있는 중국식 사회적 리얼리즘과 서구의 사회적 비판적 개념을 함께 접목하여 우리시대의 왜곡되고 억압된 사회에서의 개인의 정체성을 강렬하면서도 쉬운 언어로 표현해 낸다. 개와 아이 그리고 숨어 있는 아버지( 사회구성원이 아닌)의 상호간의 관심, 배려, 연대, 사랑 안에서의 절대제국은 대중적 표현으로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된다.

 

김미진 l 홍익대미술대학원교수, 전시기획&비평